아이티랩 - 이통사는 왜 내 개인정보를 경찰에 냉큼 넘겨줄까

요즘 이동통신사는 사용자로부터 밀려드는 ‘개인정보 열람 청구’ 응대로 바쁘다. 테러방지법 통과를 계기로 자신의 통신자료가 수사기관에 넘어간 일이 있는지 확인해보려는 이들이 늘어난 까닭이다. 한 환경단체 대표가 국정원에 자신의 개인정보가 넘어간 사실을 공개해 논란이 된 일도 이동통신사에 신청한 개인정보 열람 청구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

개인정보 열람청구는 이동통신사가 자신의 개인정보를 수사기관에 넘겨준 일이 있는지 알아보도록 돕는 절차다. 국정원이나 경찰, 검찰 등 수사기관에 자신의 통신자료가 제공된 적이 있는지, 언제 어떤 수사기관이 받아갔는지를 알아볼 수 있다. 통신자료는 보통 사용자의 가입일이나 이름,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 주소 등을 말한다. 최원식 의원실이 2015년 8월27일 밝힌 자료에 따르면, 2012∼2014년 해마다 평균 1014만568건의 통신자료가 수사기관으로 넘어갔다.

smartphone_winter_800

안 줘도 되는데…냉큼 내주는 통신 3사

현행법에 따르면,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요청에 이동통신사가 의무적으로 응할 필요는 없다. 모두 자발적인 협조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실제로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요청에 전혀 응하지 않는 업체도 많다. 왜 유독 이동통신사만 수사기관에 협조적일까. 원래 해 오던 일을 기계적으로 반복하고 있는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요구와 이통 3사의 통신자료 제공은 형사소송법 제199조 제2항과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을 따라 이루어진다.

형사소송법

제199조(수사와 필요한 조사)

②수사에 관하여는 공무소 기타 공사단체에 조회하여 필요한 사항의 보고를 요구할 수 있다.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통신비밀의 보호)

③ 전기통신사업자는 법원, 검사 또는 수사관서의 장(군 수사기관의 장, 국세청장 및 지방국세청장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 정보수사기관의 장이 재판, 수사(「조세범 처벌법」 제10조제1항·제3항·제4항의 범죄 중 전화, 인터넷 등을 이용한 범칙사건의 조사를 포함한다), 형의 집행 또는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정보수집을 위하여 다음 각 호의 자료의 열람이나 제출(이하 “통신자료제공”이라 한다)을 요청하면 그 요청에 따를 수 있다.

형사소송법에는 ‘요구할 수 있다’라고 명시돼 있고, 전기통신사업법에는 ‘요청에 따를 수 있다’라고 표기돼 있다. 다시 말해, 수사기관이 업체에 통신자료를 요구하는 것이나 이통 3사가 통신자료 요구에 응하는 것 모두 의무가 아니라는 뜻이다.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사기관의 영장 없이 이루어지는 통신자료 제공 요청에 이동통신사가 자발적으로 협조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회피 연아’가 만든 판례, “개인정보 제공은 정신적 손해”

1년에 1천만건이 넘는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이동통신 3사가 수사기관에 제공하는 것과 달리, 네이버나 카카오 등 인터넷 포털업체는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요청에 대응하지 않고 있다. 인터넷 업체의 이 같은 결정은 2012년 고등법원의 판결을 바탕으로 한다.

고등법원의 판결은 의외의 사건이 계기가 됐다. 네티즌 ㄱ씨가 2010년 당시 유인촌 문화체육부 장관과 김연아 피겨스케이팅 선수의 사진을 네이버 카페의 익명 게시판에 올린 것이 출발점이다. 이른바 ‘회피 연아’ 사건이다. ㄱ씨는 유인촌 전 장관에게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했고, 이 과정에서 네이버가 ㄱ씨의 통신자료를 종로경찰서에 제출했다.

법원은 네이버가 ㄱ씨의 아이디와 이름, 주민등록번호, e메일, 휴대폰 번호, 가입일자를 종로경찰서에 제공한 것을 ㄱ씨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및 익명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봤다. 법원은 ㄱ씨의 법익침해와 관련한 손해와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 지급을 네이버에 주문하기도 했다. 2012년 법원 판결 이후 네이버와 카카오는 수사기관의 사용자 통신자료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업체의 통신자료 제공이 사람들에게 어떤 피해를 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며 “익명 게시판에 글을 올려도 결국은 수사기관에 의해 조사를 받게 되는 상황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픈넷은 3월7일 성명을 통해 통신자료 제공 관행을 강하게 비판했다. 합법적인 절차로 집행된 영장에 응하는 것과 수사기관의 요청을 강제적인 것으로 오판해 통신자료를 제공하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는 견해다.

오픈넷은 “우리나라와 같이 국가후견주의가 강한 나라에서는 ‘합법적인 요구’와 ‘강제적인 요구’가 잘 구분이 되지 않고 있으며, 관의 ‘합법적인 요구’는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오해가 지배적”이라며 “사업자들은 정보제공이 필요한지에 대해 스스로 면밀히 판단하여 고객들의 프라이버시 보호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kakao_tra_800

카카오 투명성 보고서(2015 하반기)

naver_tra_800

네이버 프라이버시 백서(2015)

이통사 “대법원 판결 보고 판단할 문제”

이동통신업계는 통신자료 제공에 대한 시민단체와 시민의 우려에는 공감한다는 견해다. 하지만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요청을 업체가 판단해 줄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은 어렵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수사협조를 받은 상황에서 통신자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모든 요청에 대해 사용자의 정보를 수사기관에 제공하는 것은 아니고 수사기관장을 통해 들어오는 요청에 대해서만 응하고 있다”라며 “수사기관의 요청은 수사와 관련한 부분이기 때문에 업체가 판단하기는 어렵다”라고 답변했다.

또, 2012년 판례를 바탕으로 통신자료 제공을 중단한 인터넷 서비스 업계와 달리 이동통신사가 계속 통신자료를 제공하고 있는 데 대해서도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는 견해를 냈다. 당시 고등법원 판결 이후 네이버는 이에 불복해 대법원에 항소한 바 있다. 해당 사건의 대법원 판결은 오는 3월10일 나올 예정이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이동통신사의 통신자료 제공 관행도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이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2012년 판결은 고등법원 판결이고, 지금은 대법원 판결이 진행 중이라 그 결과를 보고 판단해야 할 문제”라며 “현재는 우리도 대법원의 판결을 주시하고 있다”라고 답변했다.

의견 0 신규등록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