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랩 - 이건희 없는 삼성의 미래

메모리 반도체와 모바일. 현재의 삼성전자를 만든 두 축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취임 이후 삼성은 기술 불모지 한국에서 두 분야에 과감히 투자했고,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그리고 지난 25일 이건희 회장이 투병 중 별세했다. 그가 있을 때의 삼성, 그가 없을 때의 삼성은 얼마나 달라질까.

주요 외신들은 이건희 회장의 부고를 전하며, 삼성을 현재의 글로벌 기술 기업으로 성장시킨 인물로 평가했다. <뉴욕타임즈>는 이 회장의 비자금 사건 등 과오를 짚으면서도 “이 회장이 삼성 그룹에 취임한 1987년, 서구권에서는 삼성을 할인 매장에서 파는 싸구려 텔레비전과 전자레인지를 만드는 제조사로 알았다”며 “이건희 회장은 삼성을 끊임없이 기술 사다리 위로 끌어 올렸고, 90년대 초반 삼성은 일본과 미국의 라이벌들을 제치고 메모리칩 분야 선두주자가 됐다. 그리고 2000년대에는 휴대폰이 강력한 컴퓨팅 기기가 되면서 미들급·하이엔드급 모바일 시장을 정복했다”라고 평했다.

글로벌 무대에서 이 회장의 존재감은 그만큼 컸다.

1987년 삼성그룹 회장 취임 당시 이건희 회장./사진=삼성전자 제공

블룸버그통신은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심장 마비로 입원한 지 6년 만에 사망했다”며 이 회장의 공과와 향후 삼성의 전망을 다뤘다. 블룸버그통신은 “삼성전자를 모방업체(copycat)에서 세계 최대의 스마트폰, 텔레비전, 메모리칩 생산기업으로 변모시킨 이건희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며 “오늘날 전자제품 기업으로 회사를 만든 것은 이 회장이었으며, 글로벌 경제 무대에서 한국의 대명사가 되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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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블룸버그통신은 이 회장 사후의 지배구조에 대해서도 분석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건희 회장의 상속인들은 현재 약 100억 달러의 상속세에 직면해 있고, 이를 납부하는 것은 삼성에 대한 가족의 통제를 복잡하게 만들 수도 있다”며 “상속자들은 세금을 충당하기 위해 일부 자산을 매각해야 할 가능성이 높고 삼성에 대한 지분이 희석될 것”이라고 썼다.

위기서 드러난 존재감, 휴대폰·반도체 그리고 바이오

무엇보다 이 회장의 존재감은 삼성이 위기에 직면해 있을 때 드러났다. 1995년 ‘애니콜 화형식’이 대표적이다.

삼성전자의 휴대폰 불량률이 약 12%까지 치솟았던 시기다. 브랜드 신뢰도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이 회장은 2000여명의 삼성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시장에 유통된 15만대의 애니콜 기기를 불태우며 ‘품질 최우선’ 경영을 선포했다. 또 “국민 1인당 1단말기 시대는 반드시 온다”고 강조하며 이 회장 본인도 직접 휴대폰 사업 지휘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한다.

‘애니콜 화형식’이 없었다면 지금의 삼성전자도 없었다. 그만큼 이 회장은 위기에서 삼성의 진로를 설정하고 임직원에게 나가야 할 방향성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

그가 없는 삼성에서 이런 역할을 할 인물이 있을까.

반도체 사업도 휴대폰 사업처럼 이 회장의 위기 속 존재감이 배어 있는 사업 분야다.

1974년 한국반도체 지분 50%를 인수하면서 사비를 털어 살 당시부터 그는 반도체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그리고 그룹 반도체 관련 중요한 의사결정은 모두 그를 거쳐 탄생했다. 삼성그룹 총수로서 이 회장의 처음과 끝에는 늘 반도체가 있었다.

삼성은 1983년 미국·일본에 이어 세 번째로 64K D램을 개발했고, 이듬해 256K D램, 1986년 1M D램을 만들었다. D램 개발이 기술적으로 어려워졌을 당시 반도체를 위로 쌓는 ‘스택’ 방식과 아래로 파는 ‘트랜치’ 방식 중 스택 방식을 차용하며 4M D램 개발에 성공한 것도 이 회장의 판단이었다. 그리고 삼성은 1992년 세계 최초로 64M D램을 만들며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고 반도체 회사로 거듭나게 된다.

삼성은 2000년대 초 ‘메모리반도체 제2의 도약’을 선언했다. D램 의존도를 줄이면서 낸드플래시 시장으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이어 나노 기술을 상용화하는 게 주된 골자였다. 플래시 메모리가 하드디스크나 플로피 디스크, CD롬를 종식시킬 것이란 판단은 당시엔 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삼성은 과감하게 플래시메모리에 투자했고, 오늘날 이 분야 세계 1위에 오르는 데 성공한다.

이 회장의 선택과 과감한 도전은 지금의 삼성전자가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이다. 그 결과가 지금의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2018년 반도체 호황기를 맞으며 역대급 실적을 거두게 된다. 매출은 243조5100억원, 영업이익은 58조9800억원을 기록했다. 58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은 당시 국내 무역수지 흑자액 705억달러(약 85조원)의 68%에 달하는 수치다. 2018년 삼성전자 전체 영업이익 중 75.7%는 반도체 사업에서 나왔다.

삼성전자 D램

하지만 삼성전자가 주력으로 하는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경기 변화에 민감하다. 실제 지난해 삼성전자 실적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따라 요동쳤다. 우연인지 모두 이 회장이 병석에 누워 있고 그의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을 하고 있을 때 벌어진 일이다. 지난해 전체 영업이익은 2018년 대비 52.8% 감소하기까지 했다.

이 때문에 메모리 반도체는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의 불안 요인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올해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비대면 문화가 확산됨에 따라 서버·PC용 메모리 수요가 늘면서 반도체 사업은 활황을 맞고 있지만, 여전히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이 부회장의 선택은 시스템 반도체 비중을 늘리는 것이었다. 지난해 4월 이 부회장은 ‘반도체 비전 2030’을 내세웠다. 총 133조원을 투자해 2030년 시스템 반도체 1위를 달성하겠다는 내용이다. 또 인공지능(AI) 분야에 대한 투자를 늘리면서 시스템 반도체와 AI를 접목한 AI 반도체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위기 속에서 이 부회장이 부친과 같은 카리스마와 경영 능력을 보여줄 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외부평가나 내부평가도 다르지 않다.

한 삼성전자 관계자는 “휴대폰과 메모리 반도체는 이건희 회장의 작품으로, 넥스트가 뭐냐는 질문은 내부적으로 계속 있다”며 “현재 대내외적으로 삼성전자가 차세대 먹거리로 내세우는 건 시스템 반도체와 세트 부분에서 AI 소프트웨어다”라고 말했다. 또 “위에서도 밀고 있고 아래에서도 투자와 채용을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전체 산업에서 돌아가는 걸 보면 잘못된 길은 아니지만 잘 할 수 있느냐는 별개”라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그룹 전체로 눈을 돌리면 삼성은 지난 10년간 바이오 쪽에 힘을 쏟고 있다. 바이오의약품 위탁 생산(CMO)과 바이오시밀러(복제  바이오의약품) 분야에 집중한 삼성의 바이오 사업은 현재 순항 중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올해 매출 1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은 7895억원, 영업이익은 2002억원으로 지난해 전체 매출과 영업이익을 이미 훌쩍 넘어섰다.

조명현 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 겸 고려대학교 경영대 교수는 “이미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 체재로 들어서서 바이오 쪽으로 가겠다고 선언했고 IT와 바이오 두 사업을 통해 성장할 것”이라며 “바이오 분야는 전자에서 키운 역량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분야로 성공 가능성이 높고, 삼성SDI의 2차 전지 사업도 삼성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삼성은 이미 삼성

국내 대기업들이 직면한 문제는 3세 경영이다. 재벌 체제를 둘러싸고 여러 비판이 쏟아져 나오지만, 오너십 중심의 경영을 통해 성장을 이뤄온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큰 영향력을 발휘해 온 오너가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조직이 흔들리곤 한다. 삼성은 국내 대기업 문화를 대표하는 재벌이다. 부고를 전하는 과정에서 외신들의 이건희 회장에 대한 평가는 글로벌 무대에서 이건희 개인의 존재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블룸버그>는 “삼성전자를 모방업체(copycat)에서 세계 최대의 스마트폰, 텔레비전, 메모리칩 생산기업으로 변모시킨 이건희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며 “오늘날 전자제품 기업으로 회사를 만든 것은 이 회장이었으며, 글로벌 경제 무대에서 한국의 대명사가 되었다”라고 전했다. 영국 <가디언>은 “이 회장의 지도력 아래 삼성은 스마트폰과 메모리칩의 세계 최대 생산업체로 올라섰고, 전체 매출액은 한국 GDP의 5분의 1에 해당한다”라고 평했다.

2012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가전박람회(CES)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

전문가들은 이건희 회장 별세 이후 삼성이 글로벌 시장에서 가진 위상이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다만 이 부회장의 경영 능력이 인정받기 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삼성은 그 자체로 글로벌 브랜드로 발돋움했다는 판단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삼성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개인보다는 삼성이라는 타이틀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이건희 회장의 별세로 인한 영향은 크게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명현 교수는 “이미 6년 전부터 이재용 부회장이 전면에 나서서 삼성을 대표해 글로벌 시장을 누비고 있기 때문에 이건희 회장의 별세는 큰 영향이 없지만,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 대한 법적 판단은 삼성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배구조 개편이 미래 여는 관건

결국 삼성의 미래는 지배구조 개편에 달렸다. 오너 일가의 소유권·경영권 세습은 삼성 성장 과정에서 그림자처럼 문제를 일으키고 따라다녔다. 사회 전반의 투명성이 높아지고 공정이 성장과 발전이라는 명목을 압도하게 된 시대, 삼성의 ‘명’은 ‘암’에 발목 잡힌 적이 많았다.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 재판을 앞두고 불확실한 경제 상황과 경영 공백을 읍소하지만, 오너 리스크를 만든 건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삼성의 지배구조다.

이 부회장은 지난 5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이제는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며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다”라고 선언했다. 4세 승계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국내 재벌가 지배구조에 전환점이 만들어질 수 있는 발언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이건희 회장 지분 상속, 법 규제 변화, 경영권 불법 승계 재판 등 얽힌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고 복잡한 셈법이 들어 있어 지켜볼 필요가 있다.

조명현 교수는 “이론적으로는 삼성전자 지분 없이 능력만 있으면 경영권을 가질 수 있다고 하지만, 어느 정도 지분이 뒷받침돼야 하는 게 현실이고 삼성생명 보유 지분이 빠지면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이 휘청일 수 있다. 그런 부분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 능력으로 보완해야 한다”라고 짚었다.

사법 리스크는 이재용 부회장 체제의 삼성이 당면한 현실이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불공정 합병을 통해 경영권을 불법 승계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됐다. 부친처럼 사법 리스크도 이겨내고 돌파해야 하는 게 그에게 주어진 과제다. 여기에 삼성의 미래가 걸려 있다. 본격적인 재판은 내년부터 열릴 예정이다. 또 26일부터는 국정농단 뇌물혐의 파기 환송심이 재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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