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랩 - 미국은 중국 반도체를 죽이는 걸까 키우는 걸까

[지디넷코리아]

미국의 중국 제재는 세계 경제를 새롭게 바라볼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핵심 키워드다. 변곡점은 2019년이었다. 미국이 중국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에 대한 기술 제재를 가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후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 등 첨단기술 분야로 제재는 확대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자국 산업을 위해 전통적인 관세나 환율 정책보다 기술을 통제해 공급망을 재편하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중국을 제재하기 전까지 중국은 개혁개방이후 30년 넘게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를 특징으로 하는 세계 경제에 편입돼 있었다. 특히 ‘세계의 공장’ 역할을 맡았다. 미국에서 저물가가 지속됐던 것도 그 덕이다. 미국과 중국 모두 ‘윈윈’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제재가 본격화하면서 세계 경제는 블록화하고 각국 정부와 기업과 투자자들에게는 저마다 새로운 스탠스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3~4년 계속된 미중 갈등의 결과 표면적으로는 그리고 현재까지는 미국에 유리한 것처럼 보인다. 고물가와 고금리가 계속되며 곧 경기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여러 예측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는 생각보다 더 탄탄한 모습을 보이고 있고, 중국 경제에 대해서는 위기라는 진단이 많다. 미국으로의 자본 유입은 더 속도를 내는 듯 하고, 중국에서는 외국 자본이 빠져나가는 양상이 더 가팔라진 듯하다.

(사진=화웨이)

중국은 그래서 앞으로 일본처럼 ‘잃어버린 30년’의 길을 걷게 될 것인가. 1980년대 전자산업의 전성기를 맞으며 승승장구하던 일본이 1990년대부터 불황의 늪에 빠진 데는 인위적으로 달러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특히 엔화 가치는 크게 높인 일명 ‘플라자 합의’가 출발점이었을 수 있다. 불황의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이 합의와 환율 변동으로 일본 기업 수출 경쟁력이 크게 낮아졌던 건 사실이다.

30~40년 된 일본 이야기가 미국의 중국 제재에 이따금 소환되는 까닭은 미국에 밉보여 성공한 나라는 없다는 증거를 내보이기 위해서다. 1980년대 미국을 적자의 수렁으로 빠뜨린 게 일본이었고, 플라자 합의는 이에 대한 타개책으로 나왔다. 그 결과 일본은 1991년부터 ‘잃어버린 10년’을 겪었고, 그 뒤로도 20년을 제 자리 걸음 해야 했다. 지금의 중국은 미국에게 1980년대 일본과도 같다.

정부나 기업이나 투자자 모두에게 중국의 미래가 어떠할 지를 예측하는 것은 당장의 스탠스를 정하기 위해 불가피한 노릇이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압박은 무시되지 못할 현실이고 그러므로 어떤 스탠스를 취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상당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면 ‘몰빵’이다. 경제에 있어 계획이나 예측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딱 들어맞는 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실험실이나 게임 세계와 달리 현실은 예측되지 않은 일이 주도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이 나선 만큼 중국이 과거의 일본처럼 될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다고 해서 현실이 꼭 그렇게 되리라고 장담하는 것은 섣부른 생각이자 덜 익은 사람들이 취하는 태도다. 실제로 그 예측에 가깝게 된다하더라도 그런 상황에서까지 얻을 수 있는 것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유능한 기업이자 투자자일 것이다.

3~4년 지속된 미국의 강력한 기술 통제에도 불구하고 중국 화웨이가 최신 스마트폰을 내놓으며 자체 반도체를 탑재했다는 뉴스가 쏟아졌다. 이 제품이 중국에서 순식간에 매진됐고, 제품을 직접 써본 미국 기자는 속도가 아이폰에 버금간다고 평가했다. 어떤 기사들은 그 때문에 미국이 “경악”했다는 자극적 제목을 달았다. 한 미국 매체는 미국 정계에서 “중국 제재가 실패했다”는 여론이 있다고 썼다.

이 호들갑을 두고 옛말이 떠올랐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窮鼠齧猫). 그런데 미국과 더불어 G2로 불리는 중국을 어찌 한낱 쥐에 비유할 수 있겠나. 일본이 우리를 통제한답시고 반도체 소재를 수출 금지시켰을 때를 떠올려보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G2인 중국이 왜 못하겠는가. 못하는 게 아니라 번거롭고 귀찮아질 뿐일 수 있다. 그런데 그게 그들을 도리어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

챗GPT 출시 이후 인공지능 반도체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최고경영자(CEO) 젠슨황이 정확하게 설파한 바 있다. 그는 지난 5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기업들이 미국에서 칩을 사들일 수 없다면 자체 개발에 나설 것이고 이는 중국의 반도체 자립만 도와줄 뿐"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중국을 죽이는 것인가, 키우는 것인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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