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랩 - [가보니] 게임을 닮은 넥슨 전시회

로그인으로 시작해서 로그아웃으로 끝난다.

넥슨이 마련한 온라인 게임 25주년 기념 전시회는 게임을 닮았다. 일방향적 전시가 아닌 체험에 방점을 찍고 게임을 플레이하듯 전시를 즐길 수 있도록 구성했다. 관람객들을 처음 반기는 건 키오스크 로그인 화면이다. 로그인 후 ID 밴드를 발급받아 전시장 곳곳에 설치된 ‘체크포인트’에 찍으면서 온라인 게임을 형상화한 20점의 전시 작품을 체험할 수 있다. 증강현실(AR) 기술을 결합한 NPC 시선 체험, 욕설 탐지 기능을 시각화한 작품 등을 감상할 수 있다.

| ‘마비노기’를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게임 이용자들의 협력 관계를 표현했다. 관람객이 자리에 앉아야 구조물이 작동한다.

넥슨의 사회공헌 재단인 ‘넥슨재단’은 대한민국 온라인 게임 25주년을 맞아 7월18일부터 9월1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기획 전시 ‘게임을 게임하다 /invite you_’를 진행한다. 이에 앞서 넥슨은 17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번 전시회의 기획 의도에 대해 발표하고, 기자들을 대상으로 사전 체험 기회를 제공했다.

이날 김정욱 넥슨재단 이사장은 “지난 25년 동안 게임은 기술적, 내용적으로 크게 성장해왔고 그런 발자취를 한 번쯤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 전시회를 마련했다”라며 “한쪽에서는 게임의 산업적 측면, 다른 한쪽에서는 사회적 측면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있는데 이번 전시회가 삶을 향유한다는 게임의 근원적 가치, 게임의 문화적 측면이 조명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고 전시회 개최 배경에 대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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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게임하다’의 의미

전시 구성은 메타 게임을 지향한다. ‘게임을 게임하다 /invite you_’라는 타이틀에 맞게 게임 속 가상 세계를 물리적으로 구현하는 형태로 구성됐다. 전시장 입구에서 로그인하고, 퇴장할 때 로그아웃하는 구조가 대표적이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ID 밴드를 차고 게임 ‘플레이어’로서 게임을 하듯 작품과 상호작용하도록 장치들이 마련됐다. 작품 앞에 있는 ‘체크포인트’ 기기에 밴드를 찍도록 해 관객의 체험을 데이터로 기록한다. 또 이러한 데이터는 전시장에서 퇴장할 때 영수증 형태로 출력돼 관람객은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다.

넥슨 게임에 대한 추억이 있다면 전시회를 더 적극적으로 즐길 수 있다. 대부분의 작품이 넥슨 게임을 주제로 만들어졌으며, 전시장 입구에서 넥슨 계정으로 로그인할 경우 자신의 게임 이력과 데이터를 영수증으로 받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넥슨 계정이 없다면 게스트 계정으로 로그인할 수 있다.

영수증은 이번 전시의 핵심 콘텐츠다. 넥슨 게임을 많이 즐긴 관람객일수록 영수증의 길이가 길어진다. 1m가 넘는 영수증이 나오기도 한다. 데이터는 2005년 기록부터 출력된다. 또 어린 시절 만든 게임 아이디를 통해 본인의 흑역사를 되새김질할 수 있다. 참고로 기자의 ‘카운터스트라이크 온라인’ 아이디는 ‘병석아돈꼭갚을게’였다.

넥슨 측은 이번 전시에 대해 “실험적인 동시대 미술을 전시하는 공간인 ‘아트선재센터’에 게임 속 세상을 물리적으로 구현함으로써 문화로서의 게임에 대한 의식 변화를 촉구하는 한편, 예술의 시각에서 바라본 게임과 게임의 시각에서 바라본 예술을 통해 온라인 게임, 그리고 미디어아트라는 장르적 한계를 넘어 다양한 층위의 논의의 장을 제공한다”라고 소개했다.

게임을 닮긴 닮았지만…

이러한 관점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게임 데이터를 예술 작품에 접목했다는 점이다. 이번 전시는 넥슨컴퓨터박물관과 넥슨코리아 인텔리전스랩스가 공동으로 기획했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을 연구하는 인텔리전스랩스는 이번 전시에서 유저 데이터 분석, 욕설탐지 기능, 시선 추적 등의 기술을 작품에 녹여냈다. 일종의 데이터 시각화 예술이다.

| 게임 서버 속 데이터 흐름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작품

특히 인상적인 작품은 ‘1,000,000/3sec’이라는 이름의 작품이다. 딥러닝과 자연어처리(NLP) 기술을 기반으로 3초에 백만 건의 욕설을 필터링하는 인텔리전스랩스의 욕설탐지 프로그램 ‘초코’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욕설 처리 과정을 빛으로 나타냈다. 작품 앞에 설치된 다이얼을 돌리면 빛이 욕설로 바뀌며, 욕설 처리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 욕설이 탐지되고 처리되는 과정을 시각화한 작품

시선 추적 기능을 활용해 게임 장르별 사용자 시선 데이터를 시각화한 작품도 돋보인다. 전시장 입구 근처에 놓인 이 작품은 게임 이용자가 실제로 어떻게 게임을 즐기는지 분석하기 위해 실시하는 이용자 테스트에서 아이트래킹 장비를 활용해 기록한 데이터를 시각화했다. 예를 들어 1인칭 슈팅 게임(FPS)을 표현한 작품은 게임상에서 총을 쏘는 조준점에 시선이 집중돼 화면 중앙에 점들이 몰려 있는 모습이다.

게임을 둘러싼 사회적 맥락의 변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작품도 있다. 이 작품은 온라인 게임에 관한 기록과 기사들을 연대기 형식으로 벽면에 나타냈다. 1992년 하이텔, 천리안 등 온라인 게임의 근간이 된 PC 통신 서비스의 시작으로 출발하는 연대기는 WHO의 게임이용장애 관련 기사로 막을 내린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최윤아 넥슨컴퓨터박물관 관장은 “WHO의 게임이용장애와 관계없이 오랫동안 전시를 준비했으며, 게임 중독과 관련해 반대하는 입장이 아닌 온라인 게임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지는 데 화두를 던질 수 있었으면 한다”라며 “옳고 그름을 떠나 온라인 게임에 대한 여러 논의가 만들어지는 출발점이 됐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이번 전시는 메타 게임적 요소를 뼈대로 게임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게임을 둘러싼 담론을 확장하기 위해 기획됐다. 하지만 전시의 깊이는 얕다. 자녀를 동반한 가족 관람객이 즐기기엔 아이들이 손으로 직접 만지고 놀 만한 콘텐츠가 부족하다. 로그인과 로그아웃 사이의 과정은 촘촘하지 못하다. 전반적으로 전시가 어중간하다는 얘기다. 현대 미술이 관객에게 던지는 낯선 경험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다.

| 전시장 조감도

전시 공간이 협소하다는 점도 아쉽다. 약 130평 규모의 전시장에 총 20점의 작품이 전시됐다. 5분이면 전체 전시를 훑어볼 수 있다. 기자 대상으로 진행된 사전 행사에서 마지막으로 전시장을 나왔지만 관람 시간은 36분을 채 넘기지 않았다. 이번 전시회를 보기 위해 멀리서 발걸음을 했다면 전시회가 무료라는 점을 위안으로 삼아 주변 삼청동 맛집을 찾아 헤매야 할 것이다. 또 전시를 따라가는 동선이 정해져 있지 않아 자유로운 관람이 가능하지만, 관람객이 몰릴 경우 가뜩이나 좁은 전시장이 더욱 혼잡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온라인 게임 관련 작품들을 좁은 공간에 파편적으로 나열한 전시가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불균질하다. 게임과 기술, 예술을 적당히 한 스푼씩 넣은 이번 전시는 영수증으로 대변되는 팬서비스 이상의 감흥을 끌어내지 못한다. 좀 더 본격적인 게임 예술 전시회를 기대하기엔 아직 이른 걸까. 첫술에 배부를 수 없지만, 기획 의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결과물이 못내 아쉽다. 이번 전시는 어쩌면 산업론과 문화론 그리고 중독 문제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는 온라인 게임에 대한 설익은 담론 자체를 닮은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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