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랩 - CJ헬로비전 주주총회장서 무슨 일들이 벌어졌나

[미디어잇 최재필] 26일 오전 8시 30분, 서울 마포구 상암동 누리꿈스퀘어 비즈니스타워 4층은 CJ헬로비전 임시주주총회 개최를 앞두고 매우 분주한 모습이었다. 주총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는 회사의 중대한 사안이 결정되는 날인만큼 삼엄한 경비가 이뤄지고 있었다. CJ헬로비전 주주들은 담담한 표정으로 하나, 둘 주총장 안으로 입장을 시작했다.

이날 주총에서는 SK브로드밴드와의 합병계약서 승인 안건이 상정돼 있었다. CJ헬로비전은 물론, 주주들에게 있어 매주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날이다. 주주들의 동의 없이는 CJ헬로비전이 SK브로드밴드와 합병 절차를 밟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전 8시 50분, 주총장 안에는 135명의 주주들이 미리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 총회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총장 안에서는 정적만이 흘렀을 뿐, 다들 말을 아끼고 있는 분위기였다. 행사장 맨 앞줄에는 '안전요원'이라는 명찰을 찬 건장한 성인 남성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또 행사장 곳곳에 배치된 안전요원들은 만에 하나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총회 시작 전 정해진 자리에 앉아 있던 회계법인, 고문변호사들의 표정에서도 긴장감이 맴돌았다. 조심스레 명함교환을 요청하는 기자에게 명함을 건낸 이는 법무법인 대표변호사 단 한 명뿐이었다. 중요한 사안을 맡고 있고, 수많은 언론에서 집중하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기자들과의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총회 시작 시각인 오전 9시가 되자, 김진석 CJ헬로비전 대표(주주총회 의장)가 주총장으로 들어섰다. 국민의례를 마친 뒤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총회가 시작됐다. '발언 기회는 1회, 발언은 3분 이내'라는 규칙을 설명한 뒤, 안건 동의 심사를 시작하겠다는 김 대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큰 목소리로 의사 진행 발언 기회를 달라는 주주가 나타났다.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고만 생각됐던 이번 주총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진 것.

자신을 CJ헬로비전의 주주라고 소개한 이순규 씨는 "안건 심사 전 감사보고서 공개가 필히 선행돼야 하는데, 바로 안건 심사가 진행되는 건 맞지 않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형법 413조에 이 같은 내용이 명시돼 있기 때문에 적법한 절차를 밟아달라는 게 이 씨의 주장이었다.

당황한 모습이 역력한 김 대표는 "그에 대한 부분들은 이미 공시가 됐기 때문에 오늘은 상정된 안건에 대해서만 논의하면 된다"고 차근차근 설명했다. 하지만 이 씨의 주장은 완강했고,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자 현장에 배치된 안전요원들이 순식간에 이 씨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결국 김 대표는 고문변호사에게 의사 진행 발언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고, 변호사는 "본 안건은 사전에 공지를 했고, 관련 정보도 이미 공시했다. 의장께서 진행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그냥 진행하면 된다"고 말하며 이 씨의 주장을 일축했다.

고문변호사의 답변이 끝나자, 현장에 앉아 있던 주주들은 "바쁜데 그냥 넘어갑시다", "고문변호사가 문제 없다잖아요", "안건은 듣지도 않고 대체 뭐하는 겁니까"라며 이 씨의 행동에 일침을 가하기 시작했다. 고요함만 흐르던 주총장이 하마터면 '난장판'이 될 뻔한 순간이었다.

거듭된 이 씨에 항변으로 인해 진행이 어렵게 되자, 자리에 앉아 있던 강성구 CJ헬로비전 재무팀장은 김 대표에게 노란색 메모지를 건넸다. 메모지 내용을 읽은 김 대표는 "자꾸 이러시면 의장으로서 '질서유지권'을 발동할 수밖에 없다. 주주님은 합병 승인 반대입니까? 자꾸 이렇게 회의 진행 방해하면 곤란하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상황이 무마되고 총회는 다시 진행됐다. 이후 또 다른 주주가 손을 들고 의사 진행 발언을 요청했다. 그는 "만약 정부의 합병 허가가 이뤄지지 않으면 향후 어떻게 되나?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만약 불허가돼서 합병계약서가 무효가 된다면 주주들에 대한 주식은 원상복귀 되는 것인가?"라는 세 가지의 질문을 던졌다.

주식은 회사의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폭등할 수도, 폭락할 수도 있다. 당장은 CJ헬로비전 주주들이 SK브로드밴드와의 합병을 찬성한다고 하더라도, 정부의 허가 여부에 따라 주식 상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해당 질문을 던진 주주에게서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일부 엿볼 수 있었다. 이에 김 대표는 심사 과정, 기간, 각오 등에 대해 요목조목 설명을 이어갔다.

약 30분간의 안건 동의 심사가 이뤄지고, 마지막 투표가 시작됐다. 주주들은 이번 합병에 대해 '찬성' 또는 '반대'의 표를 찍어야 했다. 결과는 전체 발행 주식수의 73.06%가 찬성하면서 최종 합병계약 승인이 이뤄졌다. 무효는 0.3%였다.

이번 합병 결의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최종 허가가 나야 한다. 합병기일은 오는 4월 1일이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최다출자자변경 및 합병심사를 맡게 되고,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업결합 심사를 맡게 된다. 또 방송통신위원회는 결과에 대한 사전 동의를 하게 돼 있다. 최종 승인은 미래부가 하게 된다. 심사는 4~6개월이 소요된다. 양사의 최종 합병이 이뤄질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재필 기자 mobilechoi@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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