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랩 - 기후위기, 건강을 노린다

[지디넷코리아]

세계보건기구(WHO)는 기후 위기를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단일 건강 위협으로 규정하고 있다. 전 지구적 현상인 기후 위기는 신·변종 감염병 발생 가능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보편적 건강보장(Universal Health Coverage, UHC)을 위협한다. 우린 이러한 위기에 과연 대비가 돼 있는가. [편집자 주]

사진=트위터

지난 8월 인터넷에서 회자된 사진이 있었다. 침수된 도로에 승용차 한데가 물에 대부분 잠겨 있는데, 그 위에 고립된 사람의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이 시사한 바가 컸다.

당시 115년 만에 수도권과 중부지방에 집중된 폭우로 14명이 사망했고, 6명이 실종됐으며 26명이 다쳤다. 이 가운데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방에 세들어 살든 일가족 3명은 갑자기 불어난 물에 현관문을 미처 열지 못해 익사하는 안타까운 사고도 발생했다.

일련의 비극적인 사건들은 폭우로 상징되는 기후 위기의 무서움을 보여준다. 기후나 자연재해니 하는 일견 우리와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이 실제로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빼앗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뼈아픈 교훈이었다.

시선을 해외로 돌려보면 기후위기가 우리 생명과 건강에 미치는 폐해는 더 분명해진다. 최근 마다가스카르의 사정은 날로 악화되고 있다. 이곳의 식량 부족 현상은 더 이상 위기 수준이 아니다. 지속되고 있는 가뭄은 농업 생산량의 급감을 가져왔고, 그동안 마다가스카르 정부의 삼림 파괴는 황사를 초래했다. 황사는 다시 경작지의 피해를 가져오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뿐만 아니다. 국경없는의사회에 따르면, 니제르 니아메 지역에서 발생한 집중호우는 홍수와 함께 농작물 침수를 가져와 영양실조와 홍수에 따른 말라리아 발생도 증가했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파키스탄에서 발생한 폭우와 대홍수로 전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겼다. 1천700명이 사망했고, 3천300만 명이 수해 피해를 입었다. 나이지리아에서도 홍수로 600명 이상이 사망, 130만 명의 수재민이 발생했다. 뿐만 아니다. 인도네시아·필리핀·방글라데시 등에서도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 기후로 피해가 이어졌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오는 2030년에서 2050년까지 기후위기로 인해 영양실조·말라리아·설사·온열질환 등을 발생, 매년 약 25만 명의 사망 피해를 발생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더구나 기후위기로 인해 발생한 건강 피해 비용은 오는 2030년까지 매년 20억~40억 달러가 될 것으로 WHO는 전망했다.

WHO는 “기후 변화는 깨끗한 공기·안전한 식수·충분한 음식·안전한 주거지 등 건강의 사회적 및 환경적 결정 요인에 영향을 미친다”고 경고했다.

사진=질병관리청

기후위기, 신·변종 감염병 창궐 발생 가능성 높여

한국환경연구원의 2020 폭염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2019년 기간 동안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자는 약 300명이었다. 온열질환은 폭염 등 기후변화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건강 위협이다.

또 지난 2016년 미국 기후변화연구프로그램(USGCRP)은 급격한 기후 변화가 현존하는 모기 등 감염병 매개체와 매개질환의 지형·계절 분포를 변화시킬 것으로 예상했다. 병원체는 토지이용의 변화와 여러 기후요인과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출현하거나 재출현할 것으로 전망했다. 대표적인 것이 말라리아와 뎅기열, 웨스트나일열 등이다. 전파시킬 수 있는 모기들은 모두 국내에 서식하고 있다.

질병관리청은 해당 감염병들과 관련해 국내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 상승, 감염병과 관련된 매개체의 서식지 확대, 서식 기간의 증가 등을 우려하고 있다. 질병청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1950년~2018년 기간 동안 뎅기열 전파 매개별 증가율은 ▲이집트숲모기 8.9% ▲흰줄숲모기 15.0% 등이다. 그런데 기온 변화에 따라 기존 발생 지역은 감소하고, 기온이 높아진 곳에서 말라리아 발생이 증가하게 된다. 이 경우, 뜻밖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홍윤철 WHO 정책자문관(서울대의대 휴먼시스템의학과 교수)은 “말라리아 대응 준비가 안 된 지역에서 발병하게 되면 건강 대응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는데 우리나라도 자유롭지 않다”며 “뎅기열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적이 없지만 안심할 수 없다. 댕기열을 옮기는 모기가 제주도에서 발견된 만큼 언제라도 우리나라에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진드기 매개체는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서식지가 북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국내 쯔쯔가무시증 연평균 환자 발생 수는 기온·일 최고기온·일 최저기온 등과의 상관성을 보인다. 감염자는 농업 및 임업 종사자의 비율이 높다. 홍 교수는 2001년~2019년 기간 동안 국내 쯔쯔가무시병 감염자 수는 지속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1912년~2010년 기온이 1℃ 상승할 때 살모넬라·비브리오장감염증으로 인한 식중독 발생 건수는 각각 47.8%, 19.2% 증가했다.

사진=김양균 기자

기후위기, 건강 불균형 악화시켜

주목해야할 점은 신림동 일가족 사망자들처럼 기후 위기 유발에 있어 미미한 기여를 한 이들이나 국가일수록 기후 위기로 인해 가장 먼저 최악의 건강에 피해를 입는다는 사실이다. 이유는 하나다. 기후 위기에 따른 실제적 건강 위협 발생 시 자신과 가족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이 가장 적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WHO는 “기후 위기는 건강 불평등을 더욱 확대시킬 수 있으며, 기존의 질병 부담을 가중시켜 의료 접근권 약화 등 보편적 건강보장(Universal Health Coverage, UHC)의 실현을 위협한다”며 “여성·소아청소년·소수 민족·경제 수준이 낮은 지역 및 국가·이민자·고령층·기저 질환자 등 사회취약층은 건강 불균형을 더 크게 실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린피스도 “기후변화 피해는 가난한 나라에 집중되고 있다”며 “국가 간 기후변화 문제에 있어 기후 부정의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관련해 저먼워치의 ‘2021 글로벌 기후 위험 지수’에 따르면, 2000년~2019년 기간 동안 기후 위기로 연간 1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들은 대부분 개발도상국들이었다. 관련해 2014년 미얀마에서는 태풍 사이클론으로 14만 명이 사망했다.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해 국제사회는 전 세계 온도 상승을 1.5°C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고 결론내린 지 오래지만, 실행력 있는 조치는 요원한 실정이다.

지난달 6일 이집트에서 개최된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총회(COP27)에서는 기후 위기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국가들에 대한 금융 지원의 논의가 시작됐다. 아울러 앞서 거론한 지구 평균 기온 상승 제한 목표도 거듭 강조됐다. 그렇지만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화석연료의 제재 및 NGO가 요구하는 퇴출 논의에 대해선 앞선 총회와 마찬가지로 이렇다 할 진전은 없었다.

홍윤철 교수는 “1.5°C 높아지면 38°C가 돼 지구 표면 온도의 항상성이 깨지면 재해성 변화를 비롯해 기온 상승에 따른 수인성 질환, 곤충 매개 감염병, 온열질환 등 직·간접 피해가 더 많이 발생한다”며 “홍수·가뭄·산불 등 재해성 피해 규모가 매년 커지게 되는데, 재해 대비가 되어 있지 있으면 피해 규모는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홍 교수는 “기후변화와 보건의료 서비스는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며 “취약 계층이 기후 위기로 인해 어떤 질환에 취약하며, 이를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한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게 관건”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보건의료 서비스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도 고민해야 한다”며 “대표적인 탄소 배출 산업인 의료산업을 어떻게 스마트한 산업체계로 바꿀지 고려해야 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지역사회의 교통체계·건물 설계·구조·바람의 흐름·녹지 조성 등을 통해 교통수단을 덜 이용하고 탄소를 덜 배출하는 지역사회 계획도 함께 살펴볼 때”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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