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랩 - 故이건희 삼성 회장의 동물사랑…진돗개 순종 보존·안내견학교 설립

[지디넷코리아]

"처음 들여온 30마리가 1백50마리로 늘어날 때쯤 순종 한 쌍이 탄생했고, 마침내 79년 세계견종협회에 진돗개를 데리고 가서 한국이 원산지임을 등록시킬 수 있었다. 나는 아무리 취미생활이라도 즐기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깊이 연구해서 자기의 특기로 만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취미를 통해서 남을 도와줄 수 있다면 더욱 좋은 일일 것이다."(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 중)

삼성 안내견 사업 30주년을 맞이하면서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국가를 위한 애견 사업이 재조명되고 있다. 고 이건희 선대회장의 '동물 사랑'은 삼성의 ▲진돗개 순종 보존 ▲시각장애인 안내견학교 ▲애견문화 전파 등으로 이어졌다.

이건희 선대회장은 무엇보다 개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한국의 국가 이미지 개선 ▲현대인의 정서 순화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 확산 ▲애견 문화 저변 확대를 통한 관련 산업 창출 등을 위해 애견 사업을 시작했다.

故 이건희 회장이 시각장애인 안내견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길러지는 리트리버 견종을 돌보는 모습(사진=삼성)

당시 이건희 회장은 "삼성이 처음으로 개를 기른다고 알려졌을 때 많은 이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비록 시작은 작고 보잘것 없지만 이런 노력이 우리 사회 전체로 퍼져나감으로써 우리 사회의 의식이 높아질 수 있도록 해보자"고 말했다.

이건희 선대회장은 첫 애견 사업으로 진돗개 순종을 보존하는 일을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내로라 하는 여러 종류의 개를 키워보면서 진돗개를 세계 무대에 내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다.

전문가들은 개의 중요한 특성인 희생과 충성에 있어 진돗개를 따를 만한 품종이 드물다고 말한다. 하지만 진돗개는 한국에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지만, 확실한 순종이 없다는 이유로 우수성이 세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또 원산지가 한국이라는 것도 인정받지 못했다. 이에, 이건희 선대회장은 순종 진돗개 보존에 직접 뛰어들었다.

이 선대회장은 1960년대 말경 진도를 찾아 거의 멸종 단계였던 진돗개 30마리를 구입했음. 10여 년 노력 끝에 순종 한 쌍을 만들어냈고, 진돗개 300마리를 키우며 순종률을 80%까지 올려놓았다.

또 그는 진돗개 품종 보종에 그치지 않고 진돗개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활동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1979년 일본에서 열린 '세계견종종합전시대회'에 진돗개 암수 한 쌍을 직접 가져가서 선보였고, 이를 계기로 진돗개는 1982년 '세계견종협회'에 원산지를 등록할 수 있었다. 2005년에는 세계 최고 권위의 애견 협회인 영국 왕실이 후원하는 견종협회 켄넬클럽에 진돗개를 정식 품종으로 등록하는데 성공했다. 켄넬클럽은 심사 과정이 까다롭기로 유명한데, 진돗개를 정식 품종으로 등록하며 '품종 및 혈통 보호가 잘 되어 있는 견종'으로 평가했다. 이 선대회장의 진돗개 순종 보존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지난 2005년 세계적인 애견대회 '크러프츠 도그쇼'에 마련된 삼성 부스에서 관람객들이 진돗개를 살펴보는 모습(사진=삼성)

이 선대회장의 진돗개에 대한 관심이 애견 사업으로 확장된 것은 '88 서울올림픽' 무렵이다. 국가 이미지 개선을 위해 애견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당시 우린나라는 올림픽을 앞두고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보신탕' 문제로 연일 시끄러웠다. 올림픽 이후에도 유럽 언론은 한국을 '개를 잡아먹는 야만국'으로 소개하는 등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돼 갔음. 영국 동물보호협회는 대규모 항의시위를 계획하기도 했다.

이건희 선대회장은 국가 이미지가 실추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한국 상품 불매운동으로 연결되면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선대회장은 고민 끝에 동물보호협회 회원들을 서울로 초청해 집에서 개를 기르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고, 애완견 연구센터 등에 데리고 가 한국 '애견 문화'의 수준을 보여줬다.

이런 노력 덕분에 영국 동물보호협회의 시위는 취소됐고, 그 이후로는 더 이상 항의도 없었다.

지난 2005년 세계적인 애견대회 '크러프츠 도그쇼'에 마련된 삼성 부스에서 관람객들이 진돗개를 살펴보는 모습(사진=삼성)

이건희 선대회장은 1993년 신경영 선언을 기념해 같은해 9월 국내 최초의 시각장애인 안내견 학교를 설립해 '초일류 삼성'을 향한 변화의 첫 걸음을 사회공헌으로 시작했다.

이 선대회장은 진정한 복지사회가 되려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배려하고, 같은 사회의 일원으로 거리낌없이 받아들이는 사회 구성원들의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는 기업이 운영하는 세계 유일의 안내견학교다. 삼성은 1994년 국내 첫 안내견 '바다'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280두의 안내견을 시각장애인에게 분양했다.

이건희 회장은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2002년 세계안내견협회(IGDF)로부터 공로상을 수상했다.

이후 삼성은 ▲인명구조견('95년) ▲청각 도우미견('02년) ▲흰개미 탐지견('03년) 등 개를 통한 CSR 활동을 확대해 갔다. 현재는 시각장애인 안내견 사업 위주로 진행한다.

19일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서 열린 안내견 30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한 (오른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홍라희 前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시각장애인 파트너들의 모습(사진=삼성)

이건희 선대회장은 세계 속에 한국의 애견문화를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1993년부터는 영국 왕실이 후원하는 권위 있는 세계적인 애견대회인 크러프츠 도그쇼를 후원했고, 2013년 대회에는 진돗개 '체스니'(Chesney)가 최초로 출전해 입상을 하는 쾌거를 거뒀다.

삼성은 2008년에는 일본에 청각 도우미견 육성센터를 설립했고, 이건희 선대회장은 일본 명문 야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최고 선수로 꼽히는 나가시마 시게오 선수에게 진돗개 암수 한 쌍을 선물로 주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에버랜드 테마파크 안에서 진돗개의 장애물 경주 모습을 선보이며 국내 애견 문화 저변 확대에 나서기도 했다. 삼성은 시각장애인들의 자립을 위한 토대 마련을 돕기 위해 안내견 양성과 함께 안내견에 대한 차별을 없애기 위한 노력도 병행했다.

용인 삼성화재안내견학교에서 안내견이 훈련 받는 모습(사진=삼성)

안내견 사업이 갓 시작된 90년대 초반에는 안내견과 함께 식당을 찾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려 할 때 '개'라는 이유로 거부를 당하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정부와 국회도 장애인 복지 향상을 위해 함께 나서면서 안내견을 동반한 시각장애인을 위한 제도적인 변화가 이어졌으며, 안내견 양성을 위한 환경도 크게 개선됐다.

이건희 선대회장의 노력은 애견 관련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국 왕실은 이 선대회장의 '동물 사랑'과 애견 문화 확산에 대한 공로를 인정해 이건희 선대회장에게 개를 선물하기도 했다.

전날 경기도 용인에서 열린 삼성 안내견 30주년 기념식 행사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고 이건희 회장 배우자)이 나란히 참석해 이건희 삼성 회장의 사회 공헌 뜻을 함께 나누고 축하했다.

홍 여사는 행사 후 참석자들에게 "이건희 회장님이 생전에 굉장히 관심 많이 가지시고 노력하시던 사업인데, 오늘 30주년 기념식을 보면 참 좋아하셨을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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