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랩 - 대법원 “경찰에 개인정보 넘긴 네이버, 잘못 없다”

수사기관의 요청이 있다면, 전기통신 사업자는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수사기관에 넘겨줘야 할까. 대법원이 지난 3월10일 오전, 개인정보를 수사기관에 넘긴 네이버에 배상 책임이 있다는 고등법원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을 두고, 영장주의의 후퇴를 불러올 판결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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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배상 책임 없다”는 대법원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2010년의 이른바 ‘회피 연아’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네이버 카페의 익명 게시판에 회피 연아 게시물을 올린 사용자를 당시 문화체육부 장관이었던 유인촌 전 장관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네이버는 익명 게시판에 글을 올린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종로경찰서에 넘겨주게 된다. 변호인은 네이버가 경찰에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제공한 것이 네이버의 사용자 개인정보보호 의무를 어긴 것이라 보고 소송을 진행했고, 고등법원은 네이버에 50만원 배상 책임을 주문한다. 이 고등법원 판례는 이후 네이버와 옛 다음, 카카오 등이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요청에 불응하는 단초가 되기도 했다.

판례에 따르면, 당시 고등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네이버에 배상 책임을 주문했다. 네이버가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데도 사안의 중대성을 따지지 않고 경찰에 개인정보를 넘겼다는 점이다.

당시 판례(2011나19012)

이 사건 카페 등의 커뮤니티 서비스는 익명표현의 자유를 그 본질적 요소로 하는 것이어서 수사기관의 개인정보 제공 요청에 대해 피고는 일반 사인과는 달리 적절한 자기통제 장치를 마련하고 있어야 할 것인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는 적어도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침해되는 법익 상호 간의 이익 형량을 통한 위법성의 정도, 사안의 중대성과 긴급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개인정보를 제공할 것인지 여부 및 어느 범위까지의 개인정보를 제공할 것인지에 관해 충분히 심사를 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할 것.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을 달랐다. 대법원은 전기통신사업자들이 수사기관으로부터 사용자의 통신자료제공 요청을 받을 때, 그 요청이 적합한 것인지, 혹은 반드시 제공이 필요한 일인지 실질적으로 심사할 의무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수사기관의 권한 남용에 대한 통제는 국가나 해당 수사기관이 직접 하는 것이지 통신자료제공 요청의 적절성에 대한 판단의 부담을 전기통신사업자에 전가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사실상 강제수사 주문한 것”

양홍석 변호사는 대법원의 이번 판결을 두고 ‘영장주의의 후퇴’를 우려했다. 지금도 전기통신사업자에 대한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요구는 영장 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통신자료는 보통 사용자의 가입일이나 이름,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 주소 등을 말한다. 최원식 의원실이 2015년 8월27일 밝힌 자료를 보면, 2012~2014년 해마다 평균 1014만568건의 통신자료가 수사기관으로 넘어갔다.

양홍석 변호사는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제공 요청에 형식적, 절차적 하자가 없다면 응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판시”라며 “수사기관의 요구를 거절하지 말라는 주문이라서 사실상 강제수사를 유도하는 꼴”이라고 주장했다.

양홍석 변호사는 이어서 “대법원이 기본권 보호의 첨병 역할을 해야 하는데, 영장주의의 후퇴를 불러오는 강제수사를 인정해버린 것 같아 안타깝다”라고 덧붙였다.

오픈넷도 11일 성명을 통해 “그동안 전기통신사업법상의 통신자료 제공제도에 대해서는 헌법상의 기본권인 통신비밀보호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영장주의와 적법절차원칙에 반하는 잘못된 제도라는 주장이 줄기차게 제기되어 왔다”라며 “이번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하여 국회는 전기통신사업법상의 통신자료 제공제도에 대해서 통신비밀보호법과 마찬가지의 수준으로 영장주의를 적용하고, 적법절차원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전기통신사업법을 신속하게 개정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네이버∙카카오, 통신자료 다시 넘길까

국내 이동통신사 3곳은 수사기관의 사용자 통신자료 제공 요청에 응하고 있다. 1년에 1천만건이 넘는 사용자의 개인정보가 수사기관에 넘어가고 있다는 통계도 이통3사의 협조 탓이다. 하지만 네이버나 카카오 등 인터넷 사업자는 같은 요구에 불응하고 있다. 2012년 고등법원의 판례를 따르는 덕분이다.

문제는 이번 대법원 판결로 고등법원의 결정이 파기 환송됐다는 점이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수사기관의 요청에 통신자료를 다시 제공하게 될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판단을 보류했다.

네이버 관계자는 “자세한 내용은 판결문을 받아봐야 알겠지만, 네이버의 통신자료 제공과 관련한 과거 업무 수행이 적법한 절차와 범위 내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대법원이 확인한 것으로 보여 우선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라며 “네이버는 이번 승소와 관계없이 서비스 전체 영역에서 사용자 프라이버시 보호 철학을 보다 강화해 나갈 것이며, 보다 구체적인 사항은 판결문을 확인하고 충분한 논의를 거친 후 입장을 정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민단체와 법조계 전문가는 네이버나 카카오의 통신자료 제공 협조 재개를 반대한다는 견해다.

오픈넷은 성명에서 “전기통신사업자들은 이번 판결을 근거로 잘못된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될 것”이라며 “대법원의 판결이 이렇다고 하더라도 소비자들의 프라이버시를 경시하는 관행에 대해서는 시장에서, 그리고 계속된 법정에서 논란을 낳을 수밖에 없다”라고 밝혔다.

대법원이 파기환송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이 문제는 다시 고등법원으로 내려왔다. 파기환송심 재판이다. 환송심에서 또 지더라도 다시 상고할 계획이라고 양홍석 변호사는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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