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광고(하)

국내 비교광고의 사례

국내 비교광고는 77년 삼성전자와 대한전선(대우전자의 전신) 사이에 벌어졌던 냉장고 광고전이 시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산업의 발전에 따라 제품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며 비교광고의 숫자도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관련법규상 「상대방을 비방해서는 안되고 제품이름을 명시해도 안된다」는 등 제한이 많아 외국같은 고차원적 크리에이티브 개발이 부족한 상황이다. 특히 「비교광고=비방광고」라고 여겨질 정도로 부정적인 이미지도 많아 광고제작자들의 운신 폭이 무척 좁은 편이다.

실제로 상당수의 비교광고가 공정위 등에 의해 비방광고라는 판정을 받고 있어 적극적인 대책마련이 필요하다.


국내에서 논란을 일으켰던 비교광고들을 일람하면 경쟁사의 브랜드네임을 의도적으로 이용하거나, 경쟁사 제품을 직·간접적으로 광고에 등장시켜 슬쩍 깎아내리거나, 자사가 일부 유리한 부분을 전체적인 것인양 과장하는 등 몇가지 유형을 찾을 수 있다.

경쟁사의 브랜드네임을 의도적으로 비틀은 사례로는 올해초 진로와 두산이 벌였던 소주광고전이 대표적이다.

사건은 두산이 숟가락이 꽂혀있는 소주병과 함께 『흘러간 노래』라는 문구로 업계 1위인 진로를 공격하면서 시작됐다. 유행이 한물 지나간 소주를 왜 마시느냐는 투였다.

진로측이 이에 발끈 『왜, 그런 소주를 마셨는지 모르겠다』고 반격하며 공방전은 본격화됐다. 주목할 단어는 「그런 소주」. 진로는 글자의 서체와 색깔을 그린소주와 비슷하게 처리해 언뜻보면 그린으로 읽히게 만든 고도의 수법을 썼다(사진1).

비슷한 사례는 올해초 현대자동차와 대우자동차가 벌였던 승용차광고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발단은 현대자동차의 아반떼 린번 TV광고. 길건너로 현대자동차 영업소가 보이는 타사영업소(대우를 암시)에서 벌어진 종업원과 손님의 대화가 문제였다. 손님이 린번엔진에 대해 묻자 종업원이 『그건 현대로 가셔야죠』라며 은근히 현대를 치켜세웠다.

대우자동차는 곧장 신문광고를 통해 『서울 부산, 누비라Ⅱ로 힘차게 왕복할 것인가? 아,반대로 힘없이 왕복할 것인가?』라며 현대를 공격하고 나섰다. 「아,반대」가 현대의 아반떼자동차를 지칭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96년엔 미스터 피자가 『피자, 헛 드셨습니다』 라는 카피로 파문을 일으켰다. 광고의 내용은 피자의 도우(빵)를 굽는데 기름을 많이 쓰면 안좋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카피를 보면 이 광고가 경쟁사인 피자헛을 겨냥한 것임이 드러난다. 「기름을 많이 쓰는 업체=피자헛=헛 먹는 업체」라는 연상이미지를 만들려고 시도한 것이다.


과장광고의 위험성도 제기된다.

지난해 현대전자는 자사의 핸드폰인 걸리버가 한국생산성본부가 조사한 「고객가치평가」에서 경쟁사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며 대대적인 신문광고를 실시했다. 그러나 이 광고는 결과적으로 사실과 다른 내용이란 점에서 공정위의 제동을 받았다.

조사에서는 종합만족도와 제품 품질, 고객유지율 등 여러가지 중요한 비교항목이 10개나 되는데도 현대전자는 자사에 유리한 항목만 골랐으며 수치도 정확하지 않다는게 공정위의 지적이었다. 현대전자는 결국 다음날 신문에 「고객가치평가」 를 「고객인지 가치평가」로 고쳐서 광고해야 했다.

송강호와 김원희가 등장했던 한국통신프리텔광고는 도로번호와 통신번호를 은유적으로 대비시킴으로써 비교광고 시비에 휘말렸다.

고인돌 자동차를 타고가던 이들이 11번과 16번 도로의 갈림길에서 PCS에 나타난 교통정보를 보고 16번 도로를 택한다는 내용이다. 단말기에는 『11번 도로 막힘, 16번 도로 소통원활』이라는 활자가 분명히 찍힌다. 이 광고 역시 SK텔레콤측이 011을 표적으로 한 것이라며 반발해 수정해야 했다.

컴팩이 작년말 IBM을 겨냥해 실시한 광고는 경쟁사의 이름을 직접 거명함으로써 직접비교광고의 물꼬를 텄다는 평을 받았다.

『지는 IBM이 있으면 뜨는 컴팩도 있다』는 카피 때문에 이 광고는 법정분쟁으로까지 확대됐다(사진2). 결국 공정위는 컴팩광고가 정당한 비교광고의 범위를 넘어섰다고 판정했다. 컴팩은 곧바로 『비싸면서 좋은 컴퓨터, 싸고도 좋은 컴퓨터』라는 새 카피로 자사 제품이 품질 대비 가격이 싸다는 점을 강조했으나 이 광고 역시 IBM에게 다시 비방광고라는 반발을 받았다.

마케팅 활성화의 새 전기 기대

공정위는 이번 표시·광고법의 제정으로 비교광고에 대한 강온 양면책을 분명히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비교광고의 허용범위는 확대하되 부당광고라고 판정될 경우에는 과감히 제재를 가하겠다는 것이다.

광고업계도 비교광고 및 관련법규가 가진 여러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를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크리에이티브의 활성화는 물론 기업에게 새로운 마케팅기회를 제공한다는게 주요한 이유다.

대홍기획 김영민 국장은 『표시·광고법의 제정은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들에게 새로운 시장창출의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분석했다. 지금까지 국내의 광고전은 크리에이티브나 마케팅의 대결이라기보다는 자금이 풍부한 대기업이 물량공세를 퍼부어 중소기업의 항복을 받아내는 식이었다는게 그의 진단이다. 그는 비교광고의 활성화를 통해 중소기업이라도 자사의 강점을 명확히 내세움으로써 보다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도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비교광고가 늘어나는 추세』라며 『소비자에게 풍부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비교광고의 확대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미국연방거래위원회(FTC)는 지난 72년 비슷한 이유로 경쟁사의 실명을 등장시키는 직접비교를 허용했으며 유럽연합도 내용이 조작되지 않고 가격이 객관적으로 검증될 때는 제품 비교광고를 허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표시·광고법의 제정으로도 비교광고의 활성화는 그다지 기대하기 힘들 것이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비교광고는 기본적으로 감성보다는 이성에 소구하는 광고기법』이라며 『신문, 잡지 등 인쇄매체라면 모를까, 불과 15~20초밖에 방영시간이 없는 TV광고에서는 활성화가 힘들 것』이라며 매체환경의 한계를 지적했다.

상표법과의 충돌문제를 어떻게 피할 것이느냐도 문제다. 금강기획 법무팀의 조재용 대리는 『상표법상의 규제때문에 타사의 브랜드네임을 거론하기가 힘들어 직접 비교광고는 아직 불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제도의 올바른 정착은 광고인의 몫

비교광고는 조금만 잘 쓰면 산업의 윤활유가 될 수 있지만 과하면 업계가 공멸로 치닫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한국은 이미 엔젤녹즙기의 쇳가루 파동, 파스퇴르유업과 유가공 협회간의 고름우유 파동에서 뼈아픈 경험을 얻은 바 있다.

이점에서 미국의 렌트카업체인 에이비스가 지난 60년대에 집행한 「2등 광고」는 국내 광고계에 좋은 모범을 보여준다. 이 회사는 이때 『에이비스는 단지 2위입니다(Avis is only No.2)』라는 유명한 광고를 전개했다.

당시 미국의 렌트카업계는 허츠(Hertz)가 점유율 60%로 압도적 1위였고 에이비스는 비교도 안됐다. 그러나 이 비교광고를 4년 집행한 이후 1위인 허츠의 점유율은 45%로 떨어지고 에이비스는 확고한 2위를 굳힐 수 있었다.

표시·광고법의 제정만으로 비교광고와 관련된 각종 문제점과 논란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제도의 틀안에서 새로운 크리에이티브의 개발로 한국광고계를 보다 풍부하게 만드는 역할은 여전히 일선 광고제작자들의 몫으로 남아있는 셈이다.

다운로드
의견 0 신규등록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