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새겨야 하는 말

마음이 어지러우면 염치 없게 찾곤 하는 '비아메디아'에서 귀한 말을 들었다. 이 귀한 말을 나 혼자 듣고, 나 혼자 위로 받는게 염치 없는 짓인 것 같아서 특히 나에게 깊이 머물렀던 문장들을 빌려온다. 물론 직접 가서 전문을 모두 읽고, 새기고, 그 말들이 그저 말이 아니라, 그저 의견이나 겉멋든 사상이 아니라, 그 마음이 소리가 되고, 그 마음 소리가 글이 되고, 그 글이 몸이 되는 육성의 호흡을 느껴보는 것. 그래서 그 말이 글이 소리가 몸에서 흐를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래서 그 말들이 그저 모두 지워져도 상관 없도록 자신의 깊은 흔적이 되도록 거듭 자신의 욕망과 나와 당신과 우리들 사이의 단절을, 그 단절을 무한하게 확장시키는 세계를 둘러싼 권력의 탐욕과 영혼없는 속도와 경쟁을 되돌아보고, 그렇게 다시 스스로에게 돌아와 함께 소망한다는 것의 의미를 성찰해보는 것. 그것을 감히 권하는 바다. 석가탄신일 아침에, 예수와 석가가 어찌 다르다고만 하겠는가, 내가 내 자신의 졸렬함을 스스로에게 야단치고, 다짐해보는 것이기도 하다.


“교회는 그 원래 의미에서, 예수의 정치학을 행동하는 사회적 공간이다. [....] 이 말은 교회가 - 비그리스도인과 협력해서라도 - 평화와 자비의 공간, 정의로운 경제 교환의 공간을 창조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말이다.”

“교회가 폭력에 저항한다면, 교회는 그 사적인 개인주의에서 벗어나서 정치적인 목소리를 지녀야 한다. 그것은 국가 권력을 다시 획득하려는 것이 아니라, 권력에 대해서 참된 말을 발설하기 위한 것이다”

“교회가 어떤 전쟁이 정의롭지 못한 것이라고 결정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은 그 전쟁에서 싸우는 것을 거절해야 한다. 이것이 현재 미국 교회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라 생각한다. 정당한 전쟁 이론이 한치라도 의미있는 것이라면, 그 때문에라도 교회는 정당한 전쟁에 대한 결정을 국가에 미룰 수 없는 것이다.”

“자유 시장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강박감을 갖게 되는가? 이론적으로, 자유 시장에서는 모든 개인은 자신이 좋다고 여기는 것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무엇이 객관적으로 좋다는 감각이 없는 문화 속에서, 남는 것은 힘이다. 의지는 좋은 것(선한 것)으로 이끌리지 않고, 마케팅의 권력이 의지를 움직인다.”

““아직 아닌” 것은 우리가 지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우리가 그리 살아가고 있다. ”

- 주낙현, 전례와 정치, 고문과 국가, 그리고 현실주의 : '윌리엄 카버너의 인터뷰' 중에서

4.
어떤 전략과 전술도, 그리고 어떤 생존 훈련도 시키지 않은 채 밖에 나가서 정체성을 갖춰라, 성장시켜라 하고 윽박지르는 것은 앵벌이하라는 말이다. 그 앵벌이의 실체는 굽신거리고 거짓말하는 일이고, 좀 힘이 있을라 치면 그마저 없는 이를 ‘삥’ 뜯는 일이다. 앵벌이로 나서는 이들 역시 힘에 눌려 여기서 도망칠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결국 그 일이 반복된다.

6.
질투와 시기는 차이에 대한 비교에서 비롯된다. 차이가 만만한 것이라면 경쟁하면 될 일이고, 넘을 수 없는 것이라면 그 차이에서 배우는게 남는 일이다. 질투와 시기는 경쟁을 통한 발전으로 이끌지도 못하고, 배움을 통해서 스스로를 먹이지도 못한다. 하느님께서 저마다 주신 다양한 은사를 늘 설교하면서도 자신은 그 말에 절대로 순응하지 않기에, 결국 복합 감정의 노예가 된다.

7.
가까운 사람들, 자신이 믿는다고 여기는 이들에게는 좀더 인색한 식별의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도전해야 한다는 말일 수도 있다. 그 가까움이 자칫 식별의 눈을 가리고 도전을 멈추게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을 자주 경험하고 전해 듣고, 또 발견하게 된다. 그 잣대로 인해서 그와 멀어진다면 오히려 잘된 일이다. 역으로, 무엇이든 받아주리라 생각했는데 애정과 합리로 도전을 해오는 이가 있다면, 그를 붙들어야 하겠다.

9.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더이상 그렇게 부르지 않고, “벗”이라 부르겠노라 하셨다. 서로들 벗으로 여기지 않으니 불행한 일이다. 어른이고 젊은이고 할 것 없이 이 “벗”에 대한 갈망과 실천을 말과 몸에 속속들이 배이도록 하지 않는 한, 결코 예수를 따르지 못한다.

- 주낙현, ‘성직자’ 잡감 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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