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법의 비즈니스적 허구성 [동상이몽]

여러모로 복잡하다. 방송법 처리 과정에 대한 어처구니 없는 절차상의 문제점을 제외하고도 미디어 관련 법 전반적으로 합의 과정이나 논의 과정 속에서 초점이 벗어난 겉돌기 때문에 핵심적인 문제를 짚고 가지 못하고 있다. 하다 못해 당연히 바뀌어야 할 항목마저도 모조리 싸잡아서 악법이 되어 버리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만들어 놓았다.

여기서 방송법, 신문법, IPTV법 조문을 하나씩 들여다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미디어가 디지털화되면서 겪게 되는 융합현상을 별개의 법으로 규제하고 또 다른 법으로는 진흥하려 하니 모순 관계가 하나 둘이 아니다.

여당의 안이 여러 차례의 수정을 거쳐 통과(됐다고 우기니 일단 다 인정한다고 치고)됐지만 그렇다고 완벽한 안도 아니다. 법안 조문의 구체성은 더구나 어처구니 없을 정도다.

오죽하면 향후 100년 동안 단 한 신문사도 나올 수 없는 가구 구독률 제한 규정을 넣었겠는가. 여론독과점을 막기 위해 가구구독률 20%를 넘는 신문은 방송 진출을 금지했다는데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그리고 동아일보를 모두 합쳐서 중복자를 빼면 20%도 안 나온다. 게다가 ABC 부수 인증체계도 제대로 잡혀 있지도 않고 주요 신문사 모두 자사 유가부수 공개를 하지 않아도 아무런 제재조치를 취할 수 없는 마당에 어느 조사기관의 어떤 기준으로 가구 구독률을 조사한다는 것인지도 불명확하다. 더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더구나 절대 수치인 가구구독률과 비례수치인 시청점유율을 합하는 산수도 안 되는 의원들에게 무엇을 바라겠는가.

일단 정치적인 함의는 놔두고 여러가지 측면에서 방송 미디어 비즈니스를 이야기해보자.

일방적으로 신문의 방송진출을 허용한 것이다?
절반만 맞다. 신문의 방송 진출도 허용됐지만 반대로 방송의 신문 진출도 허용됐다. 일단 이번에 규제가 전반적으로 풀리면서 미디어 영역 사이에 놓여 있던 진입장벽이 낮아진 것은 사실이다. 다들 신문과 재벌의 방송사 소유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지만 방송사가 신문을 소유할 수 있는 길도 열렸고 신문끼리의 교차소유의 길도 열렸다.

재미있는 것은 이 부분인데, 방송사 어디도 신문을 소유하고자 하는 니즈가 없다. 왜 그럴까. 당연히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규모도 적고 지나치게 많은 전국지들과 너무 많은 지방지, 그리고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인터넷 신문들과 특징 없는 텍스트 전쟁을 벌이려면 수지타산도 안 맞는다.

우리나라에 등록된 인터넷신문의 수를 헤아려보니 2009년 3월 17일 현재 1,399개에 이르니 지금은 1500개에 육박한다.(이중 절반 정도는 이름만 올려진 유령 언론사다)

이런 상황이라면 영향력이라도 높이기 위한 목적이라면 차라리 방송사와 인터넷의 겸영이 시너지가 더 크다(그래서 해외에서는 대부분 인터넷과 방송사의 짝짓기가 대세다). 언론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2008년에 이미 '동시보도시 영향력' 부문에서 인터넷이 신문을 앞질렀다. 1위는 많이 낮아지긴 했지만 TV 였다.

그러니 신문쪽에서 유독 방송쪽으로의 짝사랑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신문은 미래의 먹이인 인터넷 영역에서 이미 인터넷 미디어 기업들에게 플랫폼 전쟁에 임해 10년 동안 완패를 당해왔다. 심지어 그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꼴을 당하고 있으니 100년 자존심이 오죽하겠는가. 방송은 그나마 조직 구조도 비슷하고 수익구조도 비슷해 시너지가 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기저에는 '영향력 시너지도 날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신문의 방송 진출은 사업적으로 타당성이 있나?
그러나 신문의 매출액도 줄고 있고 공중파 TV 매출액도 줄고 있다. 과연 이들은 무엇을 기대하는 것일까? 경기회복? 그럼 그냥 투자 없이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더 안전하다. 종합편성채널 하나에 예상되는 초기 투자비 3000억과 연간 4, 5000억원의 비용. 더구나 이 채널이 흑자로 전환되는 시점은 아주 낙관적으로 잡아봐야 5, 6년 후다. 냉혹하게 말하면 10년이 지나도 초기 투자비도 못 건질 수 있는 비즈니스가 미디어 비즈니스다.

KBS와 MBC의 지난해 실적은 정말 끔찍할 정도였다. KBS는 765억원의 적자를 MBC는 28억원을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민영 방송이라 좀더 수익성에 치중할 수 있었던 SBS 역시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고작 77억원이었다. 경제 탓도 이었지만 지난해의 끔찍했던 상황을 탈출하고자 방송사들은 올해 너나 할 것 없이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대형 신문사들은 종합편성채널에 관심이 있을 수도 있다. 이는 보도를 망라해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정부 역시 일자리 창출 운운하면서 신문과 재벌의 방송 진출을 허용한다고 말하고 있다. 중소형 신문사들에게는 보도채널을 허용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조선, 중앙, 동아, 매경(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신방 겸영하고 있는 매체다) 정도가 공중파 방송 소유와 함께 케이블 TV 신규 종합편성채널에 관심을 가질 것이고 나머지는 보도채널에 관심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이 지독하게 사수하려 했던 소유 지분 30%는 사실 '경영 참여'의 최소 수치라는 점에서 지상파 방송의 지분 20%(신문과 재벌이 10%씩 나눠 갖는다고 했을 때)는 경영상 애매한 숫자로 비쳐진다(이 부분에 신문들의 불만이 크다). 신문과 재벌이 손발이 맞아서 10%씩 나눠갖는다고 해도 20%는 '소유'와 '경영권' 확보에는 불안한 수치이기 때문이다.

종합편성채널의 경우에는 아예 합쳐서 60% 지분을 소유하는 재벌+신문 컨소시엄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신규 채널을 만든다고 해도 재벌과 신문이 일단 자본금을 확보해도 우호 지분을 다방면에서 구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옛날 처럼 은행장실에 기자들 몇 대동해서 무이자 대출 받던 시절이 아니기 때문이다.

방송이 조중동 손아귀에 들어갈 것이다?
말로는 이렇게 쉽게 %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금액으로 따지면 입이 떡 벌어진다. MBC가 시장 추정가가 약 10조원 정도의 시장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MBC의 20%를 소유하려면(사실상 소유가 불가하지만) 2조원이 있어야 한다. SBS홀딩스가 30%의 지분으로 최대주주로 있는 SBS의 경우 시가 총액이 7812억(23일 종가 기준)원 정도인데 지분 투자 들어올 경우에는 통상 프리미엄 30~50%를 더 얹는다고 해도 20%를 소유하는 데 드는 돈이 2000억원 이상 들어간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연매출 규모가 3000억원 가량 된다.

물론 최근 중앙일보가 1000억대의 판형교체를 위한 윤전기 투자를 한 바 있긴 하다. 윤전기의 경우에는 임대도 가능하고 기존의 인쇄단가를 낮추는 효과가 있어서 여러모로 위험하긴 하지만 납득은 되는 과감한 투자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존 공중파 방송의 소유의 문제는 2012년까지의 경영금지를 비롯한 여러 제약상 그다지 메리트 있는 조건은 아니다. 그래서 동아일보가 생뚱맞게 MBC는 줘도 안 갖겠다고 한 것이다.

KBS는 원래 한국방송공사법에 의해 설치된 공영방송 기관이어서 민간 기업의 투자 참여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문제는 MBC인데, MBC의 소유지분구조도 사실상 이번 방송법상으로는 20%의 지분참여가 가능하나 방송문화진흥회법에 의해 위원장을 포함한 10명의 이사와 감사 1인이 모두 원칙상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선임을 받는 임기 3년의 이사들이기 때문에 정부가 MBC를 민간에 불하하려면 방송문화진흥회법을 이참에 바꿨어야 했다. 하지만 이번 난장판 통과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더구나 방통위가 왜 MBC의 방문진 이사를 2, 3년 안에 모두 교체할 수 있는데 피곤하게 지금 소유구조에 변화를 주겠는가. 또한 나머지 30%의 지분을 소유한 박근혜 의원이 이사장으로 있는 정수장학회 역시 특정 신문사나 재벌에 넘겨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SBS가 남는데 앞에서 말했듯이 경영권도 지분도 협상에 의해 취득도 하지 못하고(실소유주인 태영그룹도 만만치 않은 곳이다) 장중매수는 실익도 없을 뿐더러 정권이 바뀔 때마다 주관과 영혼 없이 움직이게 될 방통위의 '심의'와 '승인'까지 받아가며 SBS의 소유 지분을 당장 탐낼 곳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본다.

그럼 결국 지상파에 대한 군침 도는 이야기는 사실상 허무맹랑한 이야기라는 것이 밝혀진 셈이다. 정말 이런 상황에서 '결단'을 내린다면 그 조직이야 말로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언론의 영향력에 대한 믿음이 강하고 여론을 장악하고 싶은 부류들일 것이다.

방송 참여에 대한 욕심이 많았던 신문사들이 이번 난리통 통과에 뜨뜨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러한 불확실한 상황 때문이다.

신문사 홀로 꾸는 꿈
사실상 신문사들이 꿈꾸는 시나리오는 이런 것이었다.

일단 신문사와 재벌의 지분 소유 가능 구조를 법을 통해 확보한다.

어떻게든 둘이 합쳐서 51% 이상을 획득하도록 한다. 물론 제작 인력 및 운영은 신문사가 일단 맡고 돈은 재벌에게 대라고 한다. 실질적으로는 운영은 신문사가, 지분 투자 자금 거의 대부분은 재벌이 대는 구조를 만든다. 재벌은 다시 자회사로 방송광고 미디어랩사를 만든다. 재벌은 방송을 통해 지속적인 홍보 및 광고 마케팅을 펼칠 수 있고 신문사는 보도 및 편성에 따른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을 획득한다.

좋은 시나리오임에 분명하나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명분이 약하고 더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할 수나 있나'에 대한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재벌이라면 지금도 광고를 통한 영향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고 앞으로 어떤 미디어가 출연하든 자본에 의한 통제가 가능한데 굳이 기대수익률도 떨어지고 정치적 사회적 명분도 없이 시끄러운 동네에 발을 담그겠는가.

지금 모든 상황은 '신문사가 홀로 꾸는 꿈'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모종의 검토는 모두들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 밝은 표정이 떠오르진 않는다.

누군가 신문사와 재벌의 조직 안에서 방송 진출에 대한 기안을 올리며 향후 전망을 아주 밝게 보고 있다면, 적어도 그는 거짓말을 하거나 허황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한국에도 폭스와 같은 미디어 그룹이 생길 것이라는 매경 기사가 그래서 더 안타깝다.

** 이 칼럼은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이며 제가 속한 조직이나 기타 배후 조직이 있거나 하지 않습니다.(이런 이야기까지 해야 하나? --;)

** 관련해서 짚어볼 문제가 몇 가지 더 있습니다. 몇 개 글로 나눠 올리겠습니다.

** 관련 글 하나 더 적었습니다. 미디어법, 미래를 대비한 법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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