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성 : 참여라는 비용의 대가

나는 뭔가 보람 있는 일에 참여하고 싶다. 나에겐 충분한 동기가 있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참여하지 못한다. 문제는 항상 기회비용이다. 그 시간에 나는 보람만 얻을 뿐 물질 대가를 못한다. 정신적 보람이 어떤 의미있는 공적 행위를 지속가능하도록 만들어주는 사회가 되려면 우린 모두 천사가 되어야 한다. 물론 우리 대부분은 악마에 훨씬 더 가깝다. 그러니 참여, 대가, (기회)비용이라는 관계 속에서 지속가능성을 생각해보면 답은 명확하다.

자발적 참여가 주는 일차적인 보답은 대체로 즐거움, 보람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하지만 그 참여가 '지속가능성'을 가지려면 그 참여는 평판 시장의 축적된 가치로 형성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평판 시장이 좀더 투명하고, 공익적이며, 그래서 이기적인 시스템으로 진화해야 한다. 평판시장의 관점에서 웹을 바라보면, 혹은 웹 네트워크가 창출할 수 있는 가치의 공익성을 생각하면, 이것은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런 평판시장이 구축되면, 결국 그 기꺼운 참여의 기회비용들은,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그 보답을 받을 수 있을테다. 나는 그 평판 시장의 구축이 새로운 권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평판시장은 구제불능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대한민국이란 딱지가 붙은 울퉁불퉁한 웹에선 그렇다.


* 회고점
아거는 타블로이드 블로그 (타블로그)에 대한 우려 (June 03, 2005)에서 페니 누난을 인용하며, 자발적이며 공익적인 참여 문화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를 지적한다. 자발적 공헌자들이 실은 "평판이라든지 신뢰(trust)라든지 하는 눈에 잘 보이지 않고 잡히지도 않는 가치들 (intangible values)이 어떻게 자신들에게 궁극적인 수혜를 안겨주는가를 잘 아는 그야말로 마케팅의 귀재들"임을 아거는 지적한다. 왜 우리나라에선 이런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았는가? 나는 여러번 아쉬움을 토로한 바 있다. 블로그래픽이 수요모임이라는 한시적 스터디 친목회를 거쳐 '인터넷 주인찾기'로 진화했다. 다시 '블로그래픽'을 일으키는 일과 '인터넷 주인찾기'(이 적절한 조어를 처음 생각한 블로거는 써머즈다)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일은 적어도 나에겐 정말 중요하게 느껴진다. 양자는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되, 동시에 화학적으로 상호 작용할 필요가 있다. 인주찾기만으로는 부족하다.

* 발아점
마하반야, 인터넷 실명제 컨퍼런스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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